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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학 연구

[ 2005 ] 풀어쓴 남해현읍지(지역N문화)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5.01.07

조회수192

첨부파일

◈ 풀어쓴 남해현읍지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해현은 동쪽으로 진주까지 40리이고 서쪽 바다까지 15리, 남쪽 바다까지 36리, 북쪽 노량까지 38리, 서울까지는 1,054리의 거리에 있고 바다 가운데 섬이라고 적고 있다.

신라 신문왕이 처음으로 전야산군을 설치하였고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현종이 현령을 두었고 공민왕 때에 왜적에게 땅을 빼앗기고 진주대야천부곡에 붙어살았다. 태종조에는 하동과 합쳐서 하남현이라 일컫다가 뒤에 다시 하동현을 설치하였고 진주 금양부곡을 내속시켜 해양현이라 일컬었다. 그 후 금양을 진주에 환속하고 다시 남해라 하였으며 세종조에는 곤명현과 합쳤다가 다시 나누어 그대로 현령을 두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인류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무신 애를 써 왔다. 역사는 흘러간 시간의 기록일 뿐 아니라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의 보고이며 미래를 여는 지침서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도 역사에 기록 될 것이며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도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 남해는 옛부터 청정해역과 산자수려한 천혜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풍광이 아름다운 고장으로 넉넉한 인심, 근면 성실로 풍요롭고 살기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또한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전쟁을 승리로 장식하고 순국하신 호국충절의 고장이며 사씨남정기, 주자요어 서포만필 등을 남해에서 집필한 서포 김만중, 김용오, 송수권의 남해찬가,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 후송 유의양의 남해문견록 등 유배지에서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남긴 유배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의 맥을 전승, 발굴, 보존, 정립하여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해 향토사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이 어느때 보다 절실한 때며 역사랑 지난간 시대의 흐름을 덤는 그릇이며 그 시대의 지도자들이 남긴 발자취이기도 하다. 그동안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향토의 역사와 정기를 바로 잡고 우리고장의 역사를 바로 알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하고 중대한 사료인 경상남도읍지의 남해현지를 한글로 번역하여 발간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남해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역사의 진실된 근거를 마련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