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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 가야지 애(愛)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5.09.22

조회수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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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지 애(愛)

 

그리움이란,

 

아픈 세월을 헤집고 나온 서러운 꽃도 가슴의 뜨거움도 이젠 향불이 되어 타 버린 어느 가을 날, 상사바위에 오른 유경의 마음은 아려온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피까지 뽑혀버린 몸둥이에서 서러운 살점을 뜯어내듯 하나씩 하나씩 그리움을 잊어보려 한다.

 

코 끝에 밀려오는 싸한 바람과 바다 내음은 유경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옥상 빨랫줄에 널려있는 적당히 마른 생선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유경은 새색시 치마폭의 앙증맞은 꽃수처럼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았다. 오래간만에 킁킁거리며 맡아보는 짭짤한 갯냄새가 정겹다. 지겨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남해는 아이의 애착인형처럼 킁킁거리게 한다.

유경은 ‘어쩔 수 없는 바다 촌년인가보네! 다리만 건너가면 갯내음이 미치도록 그리워지니 말야.’ 혼자 중얼거리며 빨랫줄에 널려있는 미역깃 끝을 입에 넣고 종종걸음으로 내려왔다.

 

유경이 떠났다 돌아온 고향 바다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굵은 고둥도 잠수질만하면 잡혔던 해삼도 자연산 멍게도 보이지 않았다. 전망 좋은 바닷가의 전답은 외지인들이 사들여 풀이 무성하다. 여수로 가는 거대한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때는 바다를 시커멓게 삼켜버렸다. 갯벌은 매립으로 죽어갔고, 어릴 적 할머니와 가던 바래길도 이젠 한산하다. 인적이 드문 바다는 야속한 인간들의 싸대기를 갈기듯 무섭게 일렁이고 있었다. 여수 국가산단에서 내뿜는 오폐수와 대기오염물질은 남해의 진산인 망운산 꼭대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와 함께 매캐한 냄새를 풍긴다. 인근 삼천포 화력발전소, 하동 화력발전소에서 내뿜는 시커먼 연기와 회색가루를 힘겹게 삼키며 악착같이 푸르름을 지키고 있는 산과 바다가 대견하다.

 

유경은 남해안의 허파인 남해섬에 화력발전소까지 들어온다는 괴소문에 친구들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바다이야기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역의 유지들과 부동산 투기꾼들은 달콤한 속삭임으로 발전소 예정지 주민들을 설득했고, 졸부를 꿈꾸는 땅주인들과 생계를 고민하는 어부들의 갈등은 시골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유경은 화력발전소를 반대한다는 전단지를 뿌리다가 욕쟁이 박씨 할매와 마주쳤다.

“쎄가 만발이나 빠질 문디 가스나야! 너머 동네는 발전소고 산단이고 들어서가꼬 보상도 받고 잘 묵고 잘사는데, 빌어먹을 환경운동인가 머시깽이한다고 보상도 못받고 있다이가! 바다가 썩어 괴기도 안잡히는데 지랄도 풍년이다! 모린 강새이 보지 밥풀 뜯어먹는 소리하지 말고 안꺼지나! ” 속사포와 같은 박씨 할매의 욕보따리와 함께 유경의 머리에 따갑게 소금이 뿌려진다. 유경은 찰진 캐롤송과 짠 눈꽃송이라 상상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온다. 소금을 뒤집어 쓰고 들어오는 유경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한심한 듯 쳐다보며

 

“넘사시러워 못살것다! 다 큰 가시나가 돈은 안벌고 동네에서 욕만 쳐들어 먹는 빌어먹을 짓을 왜하노? 이 화상 누가 안잡아가나!”라고 퍼붓는 어머니의 잔소리와 함께 차려진 따뜻한 밥상이 유경은 좋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쓸모없는 불량 부속품이었는데 그래도 남해에선 존재감 있는 불량품이라 좋았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섬이 싫어 도시로 떠났다. 그러나 도시의 화려한 불빛은 유경의 것이 아니었다. 한달을 버둥거려도 통장은 늘 배고팠다. 도시 귀퉁이 선술집에서 지랄 맞은 정사장과 윤대리를 질근질근 씹으며 마시는 술잔도 지겨워졌다. 유경은 무기력한 도시 생활이 싫어 남해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