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문화원 사업
[ 2006 ] 문화학교교본 제9기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5.01.03
조회수212
◈ 문화학교교본 제9기 ◈
한국의 민속무용
한국은 일찍부터 농경민족으로 예로부터 많은 종류의 민속무용이 전래되었다.
이들을 크게 나누면 주로 농업·어업 등 생업에 관련되어 그 풍요를 기원하는 놀이로 발달한 것, 무속 기타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것, 각 고장의 전설과 어느 특정 사설에서 비롯된 것, 단순히 오락적인 것 등을 들 수 있다.
승무·살풀이춤·한량무·남무·강강술래·농악춤·무당춤·무동춤·소고춤·장고춤·쾌지나칭칭나네 등은 한국 고유의 민속무용이라 할 수 있다.
▶ 민속무용의 기본동작
우리나라 민속 무용의 동작은 부드럽고 우아하며 지속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 기본 동작은 팔동작, 발동작, 어깨동작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팔 동작은 그 움직이는 방법이나 형식이 일정하게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대표적인 것을 보면 앞뒤로 감기, 굽혀 펴기, 옆으로 돌기, 돌기, 뿌리기, 돌리기 등이 있다.
발동작은 발뒤꿈치부터 딛고 나가되, 발을 디딜 때에는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약 30도 가량 비스듬히 딛고 무릎을 완전히 펴지 않은 자세로 걷는 동작이 많다. 걸을 때에는 한 걸음, 네 박자에 한 걸음을 걷는 방법 등이 있다. 어깨 동작은 우리나라 춤의 독특한 동작이다. 팔 동작과 발동작에 맞추어 변화 있게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춘다.
오른쪽 어깨를 올리면서 왼쪽 어깨를 올리면서 왼쪽 어깨를 내리거나 또는 그 반대로 하며, 한 박자에 한 번씩 흔드는 것이 많다. 우리나라 민속 무용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농악무와 탈춤, 강강술래가 있다.
○ 농악무
농악무는 농민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내려온 춤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악기를 연주하며 여러 남자들이 함께 춘다.
이러한 농악무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오랜 옛날, 추수를 감사하는 제사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오늘날에도 모심기와 추수 때에 농부들의 수고를 덜어 주고, 흥겨움을 더해 주기 위해서 많이 행해지고 있다. 농악무는 여러 가지 옷과 악기로 화려하고 다채롭게 꾸며 추는 춤이다. 농악대에는 포수, 양반, 집사 등이 나오는데, 맡은 역할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다. 예를 들면, 양반은 바지저고리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그 위에 도포를 걸치며, 한 손에 담뱃대를 들고 다른 손에 부채를 든다. 농악대에 쓰이는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등이다. 농악대의 대형에는 한 줄로 앞뒤로 길게 늘어서는 모양, 한 줄로 양 옆으로 늘어서는 모양, 태극 모양, 소라 모양 등이 있다. 이 대형은 각 지방에 따라 약간씩 형태가 다르다. 농악무는 농민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내려온 춤으로 남자들이 추며 추수를 감사하는 제사에서 비롯되어 모심기와 추수 대에 행해진다.
○ 탈춤
탈춤은 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관료나 양반을 풍자하는 춤극으로 발전하였다. 일반 백성들은 탈춤을 통해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고, 서로 간에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탈춤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탈춤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황해도 봉산 탈춤이다. 사람들은 탈놀이를 하면 그 해에는 마음에 병이 없고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또, 탈을 문에 걸어 잡스러운 귀신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풍속도 있었다.
봉산 탈춤은, 고려 시대에는 불교 행사인 연등회 나 관등회 때 행해지다가, 조선시대 말엽부터는 오월 단옷날에 추어졌다. 봉산 탈춤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단옷날 밤에 시작해서 그 다음 날 새벽까지 계속된다. 탈춤은 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 신라때부터 시작되었고 대표적인 것으로 봉산 탈춤이 있는데, 단옷날 잠에 시작해서 그 다음날 새벽까지 춘다.
○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같은 명절에 넓은 마당으로 바닷가 모래 밭에서, 부녀자들이 둥근 달을 나타내는 원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추는 춤이다. 노래는 앞소리와 뒷소리로 나뉘는데, 목청이 빼어난 사람이 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함께 뒷소리를 한다.
강강술래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꽤 오래 전에 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오랜 옛날,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둘 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 형태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차 오늘날의 강강술래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 놀이를 이용하여 적군을 물리친 뒤,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강강술래를 할 때에는 다음의 제 가지 동작을 기본으로 한다.
돌기 :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돌면서 춤을 춘다. 옛날에는 오른쪽으로 돌았 다고 한다.
손잡기 : 손은 가자 편한 대로 잡으면 된다.
발놓기 : 오른발부터 먼저 앞으로 디디고, 뛰게 될 때에는 아무 제한 없이 마구 뛴다. 발을 디딜 때에는 보통 걷는 동작으로 한다.
손 밑으로 빠지기 : 춤이 빨라지면서 앞소리꾼이 "꺾자 꺾자 고사리 꺾자. 제주도 한라산 고사리 꺾자."라고 말머리를 돌리면, 앞줄에서 뛰는 사람은 잡았던 손을 놓고, 뒷줄 적당한 곳의 손 밑으로 빠져 나간다. 빠져 나가는 사람이 쉽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손을 높이 들어 준다. 강강술래는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 같은 명절에 부녀자들이 원을 그리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 형태에서 비롯되었고, 돌기, 손잡기, 발놓기, 손 밑으로 빠지기를 기본 동작으로 한다.
○ 승무
승무는 흔히 중춤이라고도 하지만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민간연향에서 무원이 흰 장삼을 입고 흰 한삼을 끼고 붉은 띠 모양의 가사를 매고 흰 고깔을 쓰고 추는 춤을 가리킨다. 재와 같은 큰 불교의식에는 승려들이 법고춤, 바라춤, 나비춤 등을 추는데 이것은 승무라고 하지 않고 작법 또는 법무라고 부르며, 현행 작법은 승무와 춤이 다르다. 승무는 탈춤에서의 노장춤, 상좌춤, 목중춤, 법고춤과 같은 중춤과 한량무에서의 중춤과 농악에서의 조리중춤과 같은 여러 민속적인 중춤을 토대로 하여 민간연향에서 판놀음을 벌이던 창우들 가운데 뛰어난 무원들이 판놀음의 중춤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승무는 창우들의 판놀음에서 발전하여 민간연향에서 두루 연행되었는데, 조선 말기에는 신갑두, 백설채, 한성준과 같은 승무 명인들이 나왔다. 1900년대에는 협률사, 광무대, 원각사와 같은 극장 무대에서 승무가 공연되었고 특히 승무의 무대 공연에는 한성준의 활약이 컸다. 승무는 지역마다 약간씩 특징이 다르게 전승되어 왔는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한성준에 의하여 발전된 경기, 충청승무와 이대조에 의해 발전된 호남 지방의 승무이다. 한성준의 춤은 한영숙에게, 이대조의 춤은 이매방에게 전승되었는데, 한영숙은 이미 작고했다. 승무는 해금, 젓대, 목피리, 곁피리, 장고, 북으로 편성된 삼현육각의 반주로 춘다. 먼저 매우 느린 6박자인 긴염불의 반주로 춤을 추는데 매우 느리게 움직일 듯 말 듯 어르다가 돌연히 한삼을 날려 교묘한 곡선을 그려가며 춘다. 이윽고 좀 빠른 6박자인 반염불의 장단에 세워 놓은 북을 몇 차례 어르며 치고 나서, 씩씩하고 구성진 4박 장단인 타령에 까치걸음으로 발을 딛고 완자걸이로 한삼을 뿌리고 연풍대로 돌면서 활달하고 유연하게 춤을 추다가, 흥겨운 4박 장단인 굿거리에 발을 벌리고 몸을 굽혀 무릎을 꿇고 한삼을 꼬리치며 뿌리고 한삼을 걸치며 일어서서 여러 교묘한 사위로 흥겨이 춤을 추다가, 오금을 굽히고 손을 소매에서 꺼내어 북채를 양손에 쥐고 세워 놓은 북을 어르며 간간이 치다가, 활달하고 구성진 자진모리 가락으로 북을 치며 끝 무렵에는 매우 빠르고 격렬한 휘모리 가락으로 북 가락을 몰아가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흥겨운 굿거리 장단에 팔을 소매에 넣고 한삼을 뿌리며 춤을 추다 마친다. 승무는 춤에 뛰어난 명인들에 의하여 가꾸어진 춤인 만큼 춤사위가 매우 세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남도민속무가 갖는 달고 어르고 맺고 푸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중춤이 갖는 한삼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매우 우수한 춤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