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문화원 사업
[ 1990 ] 남해문화 제6집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5.03.03
조회수175
◈ 남해문화 제6집 ◈
지난 가을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청명한 오후였습니다.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집을 나섰습니다. 오라는 이도 없었고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깥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어서 였습니다.
읍내 시가지를 걸었습니다. 읍내도 제법 복잡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지나치는 이들은 대개 얼굴이 있었습니다. 차 한잔 하자는 권유도 있었지만 어렵게 사양을 하고는 발길을 옮겼습니다. 어느덧 효자문 삼거리에 당도했습니다. 오든 길로 되돌아 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나온김에 더 걸어 보기로 하고 남산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시가지가 한 눈에 바라 보이는 자리에 아담한 벤취 몇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나처럼 무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든지 심심찮게 산책나온 젊은 남녀가 몇 쌍 스쳐갈 뿐 나이깨나 든 이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나는 벤취에 앉았다가 섰다하길 여러번 그러면서도 여태 내가 살아왔고 앞으로도 더 살아갈 인연을 생각하면서 시가지를 훑어 보았습니다.
'과연 수려한 고장이로다.' 싶은 느낌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간 글귀가 있었습니다. 남해문화 속에 있는 남해찬입니다.
황매천 뜻을 실은 잔수의 물이
조남명 노래 띄운 화개천 만나
정일두 내려 가던 섬진강 되어
충무공 노량으로 울며 흐르네
겨우 더듬거리며 한 절은 읊었지만 그 다음 절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내가 왜 이토록 기억력이 나가버렸는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기가 바쁘게 남해문화를 뒤졌습니다. 5집 속에서 남해찬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큰 소리로 낭송을 했습니다.
그토록 소리질러 몇 줄 안되는 글귀지만 읽어보기는 다된 세월 속에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내 고향에 대하여 평소에는 가져보지 못한 애착같은 것이 은근히 이는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모진 전란으로 홍역을 치를 때도 포성 하나 들을 수 없었던 평화로운 피난처 가뭄없고, 홍수도 없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경관좋고 인심좋은 이 조그만 고을이지만 이곳에 태어나 이곳에서 평화로이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아무래도 복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깔도 진한 가을하늘처럼 고운 파아란 표지의 남해문화를 오래도록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는 이내 정신을 차렸습니다. 남해문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