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윤덕섭 (尹德燮)
1921~1951
이동면 신전마을 출신. 대구사범학교 재학중 1841년 1월에 임굉(林宏), 이태길(李泰吉), 정세파(張世播) 등 동교생들과 함께 당시 대구 동운동 소재 이무영(李茂榮)의 집에 모여 항일학생결사 ‘연구회(硏究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학술연구를 표방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양하였고, 회의 운영을 위해 비밀엄수, 매월 10ㄷ일 연구발표, 하급교양 및 동지 포섭 등의 방침을 정하고, 또한 각 부서를 정했는데, 이때 그는 수학부 책임을 맡았다.
또 졸업한 뒤 교사로 부임하면 우수한 아동들에게 수재 교육을 실시해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1941년 3월 졸업한 뒤 경남 남해군 소재 중현공립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는데, 그해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본경찰의 손에 들어가 비밀결사의 전무가 드러났다. 이에 체포되어 미결수로 2년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11월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공훈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