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들면 사람들은 일은 하지도 않고 술이나 마시고 동네사 람들끼리 시비만 잦으니 인심이 흉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날 한 농부가 산에 올라가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주위 어디에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두꺼비 울음소리였고, 두꺼비는 비가 오려고 하면 나타나는 동물이다. 그런데 가뭄이 계 속되는 중에 두꺼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어디엔가 두꺼비가 있다는 것인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농부는 귀를 세워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주위는 잠시 조용해졌다. 그래서 농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너무 비를 기다리다 보니 헛소리가 들리는군." 농부는 혀를 끌끌 차고 산에서 내려오려고 하였고, 이번에는 분명히 아까보다 는 더 작은 소리지만 두꺼비의 울음소리가 또 들렸다. 그곳은 왼쪽 발 아래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이었다. 소리가 들리는 위치까지 분명했다. 농부는 그곳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 보았더니 평소에는 물고기가 있는 곳이지만 가물던 때라 먼지가 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이렇게 마른땅에 두꺼비가 있을 턱이 있나" 중얼거리고 있는 농부의 귀에 자지러질 듯한 소리가 들렸다. "꼬르르륵 꼬르르륵…." 농부는 허리를 굽혀 밭두렁 ..
노구와 물건리 대지포 사이 10리 정도 해변의 험한 길로 산등성이가 아홉, 골짜 기가 아홉으로 주민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지금은 물미도로(물건-미조)가 개통되어 바다의 수산물의 운송과 관광 해안도로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도로 개통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 도로 사이에 남녀사이 상사를 푸는 바위가 있는데 상사곶이 라고도 한다. 대지에서 노구까지는 수많은 고개가 구비구비 이어지고, 이름하여 아홉 등 아 홉 구비이다. 그 중간쯤 사량도, 두미도 등 수많은 섬들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 은 곳에 줌바우라는 바위가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어느 쾌청한 날 물건 마을에 살고 있던 아낙이 친정인 미조를 다녀오다가 지친 다리를 잠시 쉬기 위해 여느 때처럼 바위에 잠시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지나가던 인근 절의 스님도 그 바위에 쉬게 되었다. 마침 바람이 강하게 불어 아낙네의 치마자락이 날리고 젊은 아낙네는 새하얀 스님의 눈에 보이고 말았다. 속세를 떠난 스님의 마음은 벌써 아나의 치마 를 추고 말았으니. 그러나 불가에 몸을 담은 승려이기에 음심을 달래기 위해 온 노력을 했지만 흔들린 마음을 추스리지 못했다. 은 결국 아낙네를 덥쳤고 아낙네는 정조를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에 스님을 ..
구전에 의하면 내동천의 수호신인 당산나무는 조선이 건국된 1392년 이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이 3~4가구의 작은 뜸일 때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심었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느티나무로 단단하고 틀어지지 않는다. 왜군들이 총의 개머리판으로 사용하기 위해 나무를 베려 했던 인거장 [큰톱장이] 참사를 당했으며, 이후 나무 , 를 베었던 사람의 부모까지 장티푸스로 같은 해에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또한 임진왜란 때 이 나무가 통행에 지장을 준다며 가지를 벤 왜병이 마을 앞 다리를 건너기도 전에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남해군 보호수인 이 나무의 높이는 20m가 넘는다.
남해의 영산 금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삼동면 내산마을의 깊은 계곡에서부터 유유히 흘러 삼화천을 지나 봉화마을에 이르고 지족해협으로 흐른다. 봉화마을의 돌곡 이라 일컬어지는 골에 산을 향하여 앉아 있는 개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있다.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개, 개구리, 두꺼비 형상을 하고 있는 이 바위를 구성개 바위라고 부르고, 그리고 구성개바위의 150m 전방 산등성이에 검은색 바위가 10여 층으로 포개어져 면적 330㎡(100여 평)으로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층층으로 어우러져 있는 바위 덩어리를 천석암이라 부른다. 천석암은 쌀 전석을 쌓아 두는 창고이고 구성개 바위는 이 창고를 지키고 앉아 있는 지킴이이다. 신비가 감돈다는 이 돌곡은 구성개바위, 천석암 이외에 '메밀바위, 메구바위, 두꺼비바위, 개구리바위, 부정굴, 접삽굴, 길굴, 말바위' 등의 기암괴석이 즐비하여 옛날 신선이 살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금산의 기점인 이곳은 사방의 형상이 남쪽 송태산에서 줄을 타고 동쪽 타지산에서 묵을 치고 북쪽 기두암에서 기생이 단장하여 장삼 입고 서쪽 무등에서 춤을 추고 노는 형국이다. 조선시대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이 고을이 수 차례에 걸쳐 양곡을 약탈 당해 근심하던 중 하루는 꿈속에 돌곡의 신선이 나타나 지금의 천석암에 양곡을 숨기라 일러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