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출생지 :설천면 남양
1883~1954 설천면 남양 출신.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하동(또는 진주)에서 <독립선언서>를 구해 와 애국지사 정순조, 정학순, 정봉호, 윤주순 등 여러 동지들과 독립만세운동을 남해에서 일으키기로 결의해 1919년 4월 3일에 설천면 남양리 길거리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남해읍에서 있었던 4월 5일(?) 독립만세운동에는 여러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뒤 남해향교 전교와 지방 유림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1980년 대통령표창과 1990년 대한민국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지 :고현면 대곡마을
1919~1994 고현면 대곡마을 출신. 호는 향당(香塘)이고, 본관은 장수(長水)다. 인품이 훌륭했고, 가정에서 교육을 엄하게 받아 학문에 매진했다. 남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경도중학교와 일본대학을 졸업했다. 광복 전후에는 부산일보 기자 등 언론계에 종사했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위원, 시나리오 작가, 초대 영화윤리위원장, 이화여대 강사, 남해향토문화연구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에 "사향록(思鄕錄)"(1973년)과 "계사향록(繼思鄕錄)"(1973년), "남해도(南海島)"(1976년), "사향록"(1984년)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출생지 :삼동면 지족마을
1891~1955 삼동면 지족마을 출신. 독립운동가. 일찍이 국권회복을 위해 영남의 유림단(儒林團)을 결성하고, 기미 독립만세운동 이후에는 대한국민회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한흥단(韓興團)을 조직해 장차 국내의 독립전쟁에 대비 중국으로 가던 중 체포되어 모진 악형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쟁했다1922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3년 7월 25일 가출옥했다.이후 향리를 위해 남해수산중고등학교를 설립, 광복된 조국에 희사했다. 198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생지 :이동면 초양마을
1488~1547 이동면 초양마을 출신. 자는 중유(仲猷)고, 호는 당곡(唐谷)이며,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학자. 형 정희철(鄭希哲)은 자암 김구(金絿)와 교유했다.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아 평생 포의(布衣)로 살았다. 17살 되던 해 향리를 떠나 함양군 수동면 당곡으로 이주했다. 부인 나주박씨가 함양의 명문가였던 것으로 볼 때 결혼을 계기로 옮긴 듯하다.오랜 기간 함양군에서 후학들을 키우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남해에서도 뜻을 잇는 제자들이 많아 서면 중현마을에 운곡정사(雲谷精舍)를 지어 학덕을 기렸다. 지금은 운곡사(雲谷祠)로 개칭되어 해마다 추념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