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출생지 :서면 작장마을
1928~2002 서면 작장마을 출신. 교육자. 호는 이웃이고,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문인. 평생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문인으로서도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1961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소설 <백타원>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동화와 소설, 수필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창작했다. 19살이던 1947년 중현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94년 66세의 나이로 남해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했다.남해의 문인들이 활동할 터전을 만들고자 "남해문학회"를 창립했고, 이후 이들의 동인지 <남해문학>이 올해까지도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작품집에 "부부합창"을 비롯해 "아름다운 음악소리", "단방귀 이야기", "꿈꾸는 겨울나무" 등이 있다. 서면 스포츠파크 호텔 앞에 ‘이웃 문신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출생지 :남해읍 북변리
1876-1958 남해읍 북변리 출신. 지역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1921년 남해 충렬사 비각을 준공하고, 1950년 11월에는 건국기성위원장으로 충렬사 숙직사를 건립했다. 1926년부터 1929년까지 선소항의 도로와 방파제 공사에 많은 의연금과 토석 채취를 위해 밭 1151평을 희사했다. 현재 남해읍 선소마을에 <박진평시혜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에는 “부유하면서도 어질어 베풀기를 좋아했으니, 그 성품은 하늘의 참됨에서 나온 것이로다. 의롭게 재물을 내어 큰 사업을 마치니, 바다로 가는 길이 이에 새로워졌네. 거액의 금전을 선뜻 내어서, 은혜를 베풀고 어려운 이들을 구제했네. 돌에 새겨 천 년을 가게 하리니, 이 사람을 길이 기념하고자 하노라.”라 되어 있다. 선소 항구가 개축되었을 때 공사 자금을 희사했던 것으로 보인다.1945년 8월 7일에는 망운산 옥조봉 아래 추락한 B-24에 탑승하여 전사한 미군 장병 11명의 유해를 수습하는 현장을 지휘했고, 기념탑도 세웠다.
출생지 :상주면 상주리
1914~1998. 상주면 상주리 출신. 호는 묵해(黙海)다. 상주사설강습소 소학교과정을 수료했고, 일본동경대동아학원 3년제를 졸업했다. 군내외에서 서예전을 다수 열었고, 국제종합예술진흥회 명예회장 등을 지냈다. 일본시사문화상과 제18회 눌원문화상, 중화민국 국민당 영예상을 받았다.어릴 때부터 한문을 익혔고, 아버지에게서 글씨 쓰는 법을 배웠다. 창선소학교 6학년에 편입해 졸업했다.어릴 때부터 서예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오기양(吳基陽) 선생에게 사사했고, 여러 대가들의 운필과 서법을 전수받고 사숙해 서품(書品)의 신통력을 얻었으며, 평생 서예 발전과 진흥에 전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