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출생지 :남해읍 북변동
1885~1948 남해읍 북변동 출신. 1919년 4월 4일 새벽에 설천면 남양마을 출발한 독립만세 시위대가 오전 10시경 고현면 이어마을에 이르자, 시위대로부터 태극기를 받아 들고, 소리 높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시위대를 진두지휘해 이날 남해 읍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이 사건으로 인해 정용교는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 해 9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생지 :설천면 금음마을
1896~1975 설천면 금음마을 출신. 1919년 4월 2일과 4일에 걸쳐 남해읍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3월 18일에 있었던 하동 3.1만세 운동 소식을 문항마을 정임춘에게 듣고, 정임춘 정순조, 정몽호, 정학순, 유찬숙 등과 함께 남해 3.1독립만세운동 궐기할 것을 다짐했다. 궐기일 4월 2일 오후 6시, 문항마을 솥곡에서 100여 명이 집결했다. 군중들은 목청껏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남양마을로 행진하면서, 인근 부락민들과 합세했다. 이것이 남해군 독립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다.정익주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이튿날 4월 3일 전열을 정비하고, 남해읍 장날인 4월 4일 새벽에 남양마을에서 출발했다. 오전 10시경 고현면 도마마을을 경유하면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連唱)했다. 남해읍 시장에 당도하자 700여 명에 군중이 모였다. 선두에 서 군중들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이 사건으로 인해 윤주순은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 해 8월 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생지 :설천면 비란마을
1897~ 1950 설천면 비란마을 출신. 1919년 4월 2일과 4일에 걸쳐 남해읍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3월 18일에 있었던 하동 3.1만세 운동 소식을 문항마을 정임춘에게 듣고, 정임춘 정순조, 정몽호, 정학순, 유찬숙 등과 함께 남해 3.1독립만세운동 궐기할 것을 다짐했다. 궐기일 4월 2일 오후 6시, 문항마을 솥곡에서 100여 명이 집결했다. 군중들은 목청껏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남양마을로 행진하면서, 인근 부락민들과 합세했다. 이것이 남해군 독립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다.윤주순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이튿날 4월 3일 전열을 정비하고, 남해읍 장날인 4월 4일 새벽에 남양마을에서 출발했다. 오전 10시경 고현면 도마마을을 경유하면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連唱)했다. 남해읍 시장에 당도하자 700여 명에 군중이 모였다. 선두에 서 군중들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이 사건으로 인해 정재모는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 해 8월 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생지 :설천면 문항마을
1897~1920 설천면 문항마을 출신. 1919년 4월 2일과 4일에 걸쳐 남해읍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정학순은 1919년 3월 하순 설천면 남양마을 정임춘으로부터 3월 18일에 있었던 하동 3.1만세 운동 소식을 전해 받았다그 소식을 전한 정임춘은 문항마을 정자(亭子)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정순조, 정몽호, 정학순, 유찬숙과 함께 첫 모임을 가졌다. 독립만세운동의 전말과 그 의의를 전하자, 전원이 동의로 궐기할 것을 다짐했다. 4월 2일을 궐기 일자로 정하고, 문항마을 솥곡에서 출발, 설천면 남양마을 읍내로 진출했다. 그들은 태극기를 각 가정에서 5백 매 이상을 만드는 들 준비를 하기로 했다. 상기 지도자 다섯 명 외에 남양마을 이예모, 진목마을 정흥조, 류봉승, 문의마을 윤주순, 금음마을 정익주, 비란마을 정재모 등 여섯 동지를 추가 규합했다. 규합된 동지들은 다시 부락민들에게 뜻을 같이하여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모두들 흔쾌히 승낙하고 투쟁할 것을 서약했다.궐기일 4월 2일 오후 6시, 문항마을 솥곡에서 11명을 주축으로 100여 명이 집결했다. 군중들은 목청껏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남양리로 행진하면서, 인근 부락민들과 합세했다. 이것이 남해군 독립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다.이 소식에 놀란 경찰들은 이예모와 유찬숙을 붙잡아 설천면 주재소로 끌고 갔다. 끌려온 이들..
출생지 :설천면 진목마을
1889~1964 설천면 진목마을 출신. 1919년 4월 2일과 4일에 걸쳐 남해읍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3월 18일에 있었던 하동 3.1만세 운동 소식을 문항마을 정임춘에게 듣고, 정임춘 정순조, 정몽호, 정학순, 유찬숙 등과 함께 남해 3.1독립만세운동 궐기할 것을 다짐했다. 궐기일 4월 2일 오후 6시, 문항마을 솥곡에서 100여 명이 집결했다. 군중들은 목청껏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남양마을로 행진하면서, 인근 부락민들과 합세했다. 이것이 남해군 독립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다.정흥조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이튿날 4월 3일 전열을 정비하고, 남해읍 장날인 4월 4일 새벽에 남양마을에서 출발했다. 오전 10시경 고현면 도마마을을 경유하면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連唱)했다. 남해읍 시장에 당도하자 700여 명에 군중이 모였다. 선두에 서 군중들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이 사건으로 인해 정흥조는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 해 8월 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