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출생지 :삼동면 지족마을
1891~1955 삼동면 지족마을 출생. 1920년 2월 16일 김광제(金光濟), 문탁(文卓), 김영만(金榮萬), 이종민(李鍾萬) 등과 함께 조선노동대회를 조직하였다. 여기서 그는 재무를 담당하였다. 한때 회원이 8천여 명에 이르렀으나, 내부 갈등과 재정난으로 활동이 위축되던 중 1924년 4월 조선노동총연맹에 합류하였다.이후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자 1921년 11월 15일 경기도 인천에서 한흥회(韓興會)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12월 16일 인천을 출발 중국 상해로 가던 중 경의선 차련관(車輦館)에서 체포되었다.1922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3년 7월 25일 가출옥했다.공훈을 기려 198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생지 :설천면 비란마을
1897~1950 설천면 비란마을 출신. 1919년 4월 2일과 4일에 걸쳐 남해읍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3월 18일에 있었던 하동 3.1만세 운동 소식을 문항마을 정임춘에게 듣고, 정임춘 정순조, 정몽호, 정학순, 유찬숙 등과 함께 남해 3.1독립만세운동 궐기할 것을 다짐했다. 궐기일 4월 2일 오후 6시, 문항리 솥곡에서 100여 명이 집결했다. 군중들은 목청껏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남양마을로 행진하면서, 인근 부락민들과 합세했다. 이것이 남해군 독립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다.윤주순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이튿날 4월 3일 전열을 정비하고, 남해읍 장날인 4월 4일 새벽에 남양마을에서 출발했다. 오전 10시경 고현면 도마마을을 경유하면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連唱)했다. 남해읍 시장에 당도하자 700여 명에 군중이 모였다. 선두에 서 군중들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이 사건으로 인해 정재모는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 해 8월 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생지 :남해읍 차산마을
1887~1952 남해읍 차산마을 출신. 1919년 4월 2일과 4일에 걸쳐 남해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설천면 문의마을에 사는 이예모(李禮模)가 하동에서 독립선언서를 구하여 귀향하면서부터 계획되었다 장학순은 이예모와 정순조(鄭順祚), 정몽호(鄭夢虎), 윤주순(尹柱舜) 등과 만나 4월 2일 거사일로 결정하고 인근 동리에 이 계획을 알렸다.4월 2일 오후 3시경 주동자들은 많은 시위군중과 함께 남양마을 노상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선두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해읍을 향하여 시위행진을 했다.시위대열이 고현면에 이르렀을 때 면장 김치관(金致寬)은 많은 시위군중의 위세에 놀라 이 사실을 주재소에 밀고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김치관이 밀고한 사실도 알게 된 시위군중은 다음 남해읍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약속하고, 일단 해산했다.4월 4일 아침 일찍 장학순은 장꾼으로 가장하고 남해읍 장터로 나아갔다. 장꾼이 7백여 명으로 늘어난 오후 3시경, 전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했던 시위군중은 약속된 신호에 따라 가슴에 숨겨 온 태극기를 꺼내들고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시위군중은 군청과 우체국, 학교, 주재소에 들어가 관리들을 끌어내어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고, 경찰간부의 모자와 대검을 빼앗아 내동댕이쳤다. ..
출생지 :서면 도산마을
1929~2018 서면 도산마을 출신. 육군종합학교에 입학, 졸업 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에 임관되어 근무하였다.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선임되자 1청와대 대통령경호실 과장에 임명되어 곧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경호과장에서 경호차장으로 승진하였다. 1964년 7월 박정희 대통령이 청해대에서 신동관 당시 경호과장의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남해대교 건설이 확정되고 1968년 5월 착공되는 결과를 낳았다.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8년 초 제2무임소장관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치러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이후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레저업체를 운영하던 중 1984년 해금되었다.
출생지 :남면 홍현마을
1931~2020 남면 홍현마을 출신.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6.25 전쟁 때는 소대장을 거쳐 제9보병사단 참모장, 제1야전군사령부 정보처장, 제5군관구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쳐 198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같은 해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이사로 근무하였다.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고,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1년 한국도로공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이후 여러 곡절을 거친 끝에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포기했다.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으나 이듬해인 1998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20년 4월 29일 별세했고,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