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구렁이로 변한 연인과 상사바위
옛날 남해섬의 어떤 고을에 곱게 자란 무남독녀를 가진 부자가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하인들 중 한 명의 아들인 돌쇠라는 총각이 주인의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한 신분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가까이 갈 수도 없었고, 돌쇠는 마음만 태우다가 상사병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들시들 앓다가 죽고 말았다.
며칠 후 사랑을 이루지 못한 돌쇠의 혼이 구천을 떠돌다 구렁이로 변하여 밤에 주인의 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몸을 칭칭 감았고, 다음날 아침 구렁이가 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을 본 부자는 기겁을 했다.
구렁이를 딸의 몸에서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꼼작도 하지 않았고, 부잣집 내외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효험도 없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전전긍긍하고 있던 부잣집에 수염이 긴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따님과 구렁이를 금산에 있는 높은 벼랑으로 데려가서 굿을 하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해 보아라."
노인이 사라지자 부자는 노인이 시키는 대로 딸을 데리고 금산에서 제일 높은 벼랑 위에 올라가 굿을 하기 시작하였고, 굿이 한창 절정에 이르고 있을 때 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뱀의 서서히 풀어지면서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 벼랑을 상사를 풀었다 하여 상사바위라고 부르고 있고, 상주 금양쪽 등산로 입구에서 금산 전체의 절경을 볼 때 뚜렷하고 큰 바위가 상사바위이다.
이 상사바위와 구렁이에 얽힌 또 다른 구전설화가 있다.
신라시대 한 젊은이가 수도를 하기 위해 금산의 한 암자를 찾았고, 고향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지만 인생무상을 절감한 젊은이는 사랑하는 연인을 잊은 채 암자에서 수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도를 하기 위해 떠난 젊은이를 기다리던 여인은 그리움에 지쳐 병들어 갔고, 하루가 삼 년처럼 느껴지는 세월을 야속해 하던 여인이 결국 상사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죽은 여인의 혼은 구렁이가 되어 그리운 낭군을 찾아 남해 금산 암자로 왔고, 꿈에도 잊지 못하던 님을 발견한 구렁이는 애소하듯 젊은이의 몸을 칭칭 감았다.
젊은이는 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감는지도 모를 정도로 수도에만 몰두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이상을 느낀 청년은 눈을 떴고,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저는 당신의 연인이었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다 죽어 저승으로 가지도 못하고 구렁이가 되어 찾아왔습니다. 당신도 저와 함께 죽어 구렁이가 되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이 없으면 저승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구렁이가 되어서라도 당신과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구렁이의 애원에도 청년은 불경 외우기를 그치지 않았고, 한낱 여인의 사랑을 위해 자신이 수도하는 뜻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 사랑하는 연인의 뜻을 꺽을 수 없다고 여긴 구렁이는 힘이 빠지면서 슬거머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날이 밝아오고 해가 떴고, 젊은이는 간밤의 번우를 씻은 듯 큰 바위 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눈을 돌리는 순간 바위 절벽 아래 큰 구렁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젯밤 자신을 찾아와 함께 죽어서라도 사랑을 나누자고 했던 사실을 실감했고, 젊은이는 자신을 그리워하다 죽은 연인을 불쌍히 여겨 제사를 지내고 이 바위를 상사암이라고 이름을 짓고 여인의 원혼을 달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