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옛날 옛적 달구산 아래 두 쌍의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한 부부는 욕심이 많고 고약한 반면 한 부부는 성품이 온화하였으며 평소에 닭을 많이 길렀고, 어느 날 닭이 집 밖으로 나가자 욕심 많은 부부는 닭을 뒷산으로 쫓아 버렸다. 마음씨 착한 부부는 집나간 닭을 찾아 온 산천을 헤매었으나 보이지 않자 나중에는 물동이에다 닭모이와 물을 담고 머리에 이고 찾아다녔다. 닭을 찾다 지친 노부부는 그 물동이를 큰 바위 위에 두었는데 지금 그 바위를 동우(양동이)바위라 부르고 할아버지가 닭을 찾을 때 입고 다니던 우장을 걸쳐두었던 바위를 우장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는 닭을 잡아먹고 배가 불러 일어나지 못하고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 산 꼭대기에서 아침 일찍부터 닭이 울었다 하여 닭곡산이라 불리워 왔으나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월구산으로 변했다.
남해읍에서 큰 갓곡을 지나 큰 길을 따라 가면 다정 입구 왼쪽에 뽀족한 산이 솟아 있다. 아주 먼 옛날 그 산 밑에 늙은 부부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마음씨가 좋지 못하고 천하에 둘도 없는 욕심쟁이였으며 제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마음씨가 착하며 진실하고 상냥한 사람이었고, 어느 날 잠겨진 사립문 밖에서 스님 한 사람이 사주를 위하여 염불을 외우며 문을 두드리니 주인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이런 부잣집에서 시주를 안 받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문을 두드리니 이번에는 시주할 것이 없다고 가라고 하였다. 스님은 돌아갈 줄 모르고 염불을 외우며 사주해 주기를 기다렸고, 할아버지는 안 되겠는지 마굿간으로 달려가 쇠똥을 자루에 싸서 스님에게 주었다. 태연히 이를 받은 스님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고, 자초지종을 지켜본 할머니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할머니는 스님에게 박대한 할아버지 몰래 곡식을 가지고 스님이 떠나간 뒤를 따라갔고, "스님 이것을 가지고 가세요, 우리 영감이 천성이 고약해 그러니 너무 서운해 마시고 좋은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할머니의 성의에 고마움을 느낀 스님은 조용한 음성으로 당부하고 사라졌다. "며칠 뒤에 당신 집 마당 한가운데서 물이 솟아..
고려 말, 이성계는 크나큰 꿈을 품고 전국을 돌아디니며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등 이름난 산에서 산제를 지내면서 백일기도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별다른 효험이 없어 마지막으로 지리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렸지만 역시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고 지리산에서 새벽에 일어난 이성계는 남쪽을 바라보았다. 안개 속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뻗어 나오고 있고, 뒤늦게 남해 금산이 영험한 산임을 안 그는 서둘러 섬으로 건너와 금산 보리암 동쪽 바위 위에 앉아 기도를 올리기로 하였고, 마침 오른쪽 큰 바위 정상에는 세 개의 바위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금산 신령님이시여! 백일기도를 마치는 날, 내가 이 나라의 재상이 될 운명이라면 저 세 바위 중 바위 하나를 세워주시고, 이 나라의 왕이 될 운명이라면 두 개의 바위를 세워 주시고, 중국까지 통일할 황제가 될 운명이라면 세 개의 바위를 모두 세워 주시옵소서." 이성계는 자신의 운명을 점지해 달라는 기원과 함께 백일기도룰 시작했고, 산제를 지내고 있던 98일째 된던 날, 난포현 난음에 있는 정자나무 옆에 세워진 군자정 아래에 한 젊은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멀리에서 온 한 행신이 군자정의 정자나무 목신에게 말했다. "여보게 정자나무 신령, 금산에서 이씨라는 성을 가진 자가 백일 산제를 지낸..
남해읍에서 남쪽으로 약 10리 정도 떨어진 이동면 다정리에 지금부터 약150년전 한 부부가 정답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납산 골짜기에 곱디고운 무지재가 피었고, 남편은 무지재 색깔이 너무 좋아서 자신도 모르게 그 무지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지개는 가까워 보이는 듯하면서도 가까워지지 않았고, 밤이 깊어지자 무지개 따라가기를 포기한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려고 발길을 돌렸다. 바로 그때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거기 멈추어라. 너는 무슨 일로 이 깊은 산 속을 헤매고 다니느냐?" "무지개가 너무 고와 따라왔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밤이 깊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백발노인은 남편을 데리고 깊은 산 속으로 가 버렸고, 집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밤이 되어도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밤을 세웠다. 다음날부터 주변 산 속을 찾아 다녔지만 남편을 찾을 수 없었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나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딸은 어머니에게 울면서 물었다 "왜 우리는 이 곳에서 아버지도 없이 살고 있습니까?" 그 후 아내는 무지개가 피면 자기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무지개를 향하여 걷다가 지쳐서 쓰러지곤 하였고, 그 아내는 몇 해가 지나도 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면서 남편이 떠나간 곳에 있는 배와 같이 생긴 바위에서 몸을 깨끗..
고려시대 어느날 해질 무렵 난음리 어떤 집에 머슴살이 하던 백씨 총각이 뒷산에서 나무를 해서 집으로 내려오는데 산길을 올라오는 여인을 만났다. 총각은 아녀자의 몸으로 땅거미가 짙어오는 저녁에 산길을 오르는 것이 이상하여 이유를 물었다. "낭자는 무슨 연유로 날이 어두워지고 잇는데 산길을 오릅니까?" "사람 사는 곳이 산 속보다 더 무서워 산에서 살아갈까 합니다." "나는 저 아랫마을에 사는 머슴인데 저희 주인어른이 인자하고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분이니 하룻밤 머무르고 난 후에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백씨 총각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처녀가 안스러워 재차 자신이 머슴살이 하는 곳에서 같이 지내기를 권유했지만, 처녀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밤에 산 속에서 지내는 것이 사실 무섭기도 하여 다음날 일찍 산에 올라 거처할 곳을 찾기로 생각하고 총각의 제의에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처녀는 주인의 인간됨과 백씨 총각의 인정이 남다름을 느끼고 그 집에서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 처녀는 살아가면서 백씨 총각의 인간됨에 반하게 되었고, 결국 두 남녀는 혼인을 하여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딸을 낳아 살았다. 남편은 아내가 어디에서 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지 않았고, 세월이 흘러 자식들도 커가고 생활의 안정도 찾아가게 되자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