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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8. (토) ~ 09. (일)

남해섬 유배를 자처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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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문화재

임종욱 작가의 남해사우(祠宇)를 찾아서 #7 충렬사

남해사우 충렬사

남해사우 충렬사

  • 소재지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
  • 문화재종류 :대한민국 사적 232호, 제233호
  • 지정일 :1973

■임종욱 작가의 남해사우(祠宇)를 찾아서 #7 충렬사
이곳은 남해의 얼이 서린 곳,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더 이상 안내가 필요하지 않은 충렬사는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노량로 183-27)에 있다. 1628년(인조 6) 남해의 뜻있는 선비 김여빈(金汝贇) 옹과 고승후(高承厚) 옹 두 분이 초옥 한 칸을 지어 추모한 일에서 충렬사의 단초는 열렸다. 1658년에 신축되고 노량서원이 세워져 사우를 관리했는데, 서원은 대원군 철폐령 때 훼철되고 말았다.
이후에도 다양한 선양 사업이 펼쳐졌다. 심지어 서슬이 시퍼렇던 일제 강점기 때도 민족 영웅을 숭앙하는 행렬은 끊어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 성역화 사업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1973년에는 유허지와 본사(本祠)가 대한민국 사적 232호와 제233호로 지정되었다.
충렬사를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은 모충회(慕忠會)에서 출발했다가 2005년 사단법인 남해 충렬사로 확장되었다. 회원은 현재 150여 명에 이른다. 제4대 박정문 이사장이 2014년 선임되어 강광수 사무국장과 함께 선양 사업을 이끌고 있다.
충렬사의 중요 행사로 4월 28일의 탄신일 다례제와 12월 16일 기향제(忌享祭)를 모시는데, 이때 군청으로부터 제수 비용을 지원받는단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행사를 축소하여 봉행했다.

 

충무공의 순국은 생명의 끝이 아닌 불멸의 시작


비가 곧 쏟아질 것 날씨를 뚫고 만난 박정문 이사장과 강광수 사무국장은 소임에 대한 자부심부터 대단했다. 국가지정 사적의 지킴이로서 충무공의 충혼(忠魂)을 기리는 큰 영예와 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뜨거웠다.
박정문 이사장은 첫 마디부터 자랑이 넘쳤다.
“한 해 20만 명을 헤아리는 참배객이 찾아옵니다. 지금은 코로나 여파로 줄어들었지만, 순국지로서 이곳은 전 국민의 순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한 분의 죽음이 불멸의 명예를 얻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강광수 사무국장도 “회원 분들을 모시고 해마다 한 차례씩 유적 탐방을 갔는데, 지금은 중단된 상태”라고 아쉬워하면서도 “이런 성역을 길이 보전해 후손된 긍지를 드높여야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해 충렬사가 관할하는 지역은 충렬사뿐만 아니라 이락사와 첨망대 사이 유적지도 포함된다.
“전적지는 곳곳에 있지만, 순국지는 남해 한 곳뿐이지 않습니까? 그 자체로도 노량은 충무공의 삶과 업적에서 지워질 수 없는 의미 있는 장소”라고 두 분은 입을 모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다


그러나 자부심 한 편에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우선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성역화 사업 시행이 쉽지 않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충렬사 앞 바다에 오색분수를 설치해 보려 했는데, 큰 진척이 없었단다. 국가지정 사적이다 보니 환경을 조금만 바꿔보려고 해도 문화재청의 승인과 지시를 받아야 했다.
소중한 문화재니 원형 보존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는 개선도 필요한데, 이런 부분에서 애로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들이 참배할 수 있는 시설이 미비한 점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정문 이사장은 고현에 있는 이순신 영상관과 공원이 걸어도 한 시간 이내면 접근할 수 있어 별개로 운영할 게 아니라 연계된 시스템을 갖추면 시너지 효과가 커질 것이라 지적했다.
“소규모의 용역 발주가 몇 번 있었는데, 그다지 성과가 있지 않았어요. 차라리 규모를 키워 설천의 충렬사와 고현의 대장경 판각지, 이순신 공원을 하나로 묶어 광역 관광 단지 조성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충렬사와 이순신 공원은 임진왜란 때 대일본 항쟁지고, 대장경 판각지는 대몽항쟁기의 유적이니, ‘호국 관광 권역’ 개발 사업을 추진해도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작은 규모의 사업으로는 제동만 걸리니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효율성이나 성과라는 측면에서도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기자가 듣기에도 바람직한 접근 방식으로 보였다. 강광수 사무국장이 한 마디 덧붙였다.
“사실 규모로만 보면 타 지역 충무공 유적지가 더 넓을뿐더러 홍보에도 도움이 되어 보이더군요. 그쪽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하는데, 정작 우리에게는 소소한 난관이 있으니 뭔가 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노량서원이나 죽림서원의 복원도 필요하고, 이순신리더십센터를 구축해 활용하는 방안도 공격적으로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을 두 분은 가지고 있었다. 순국지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부각시키면 상대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내부공사 때문에 닫혀 있는 충렬사 입구를 서성이면서, 이곳이 어서 빨리 명실상부한 남해 관광과 역사 탐방의 중심지로 우뚝 설 날을 기대해 보았다. 남해-여수 해저 터널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희망을 가꿔나간다면 그리 어렵지도 않을 듯했다.

 

*지난 ‘율곡사 취재’ 기사에서 율곡사보존회 회장 성함은 ‘최종연’이 아니라 ‘최종현’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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