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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8. (토) ~ 09. (일)

남해섬 유배를 자처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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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문화재

임종욱 작가의 남해사우(祠宇)를 찾아서 #6 율곡사

남해사우 율곡사

남해사우 율곡사

  • 소재지 :남면 당항리 1473-4번지
  • 문화재종류 :-
  • 지정일 :-

■임종욱 작가의 남해사우(祠宇)를 찾아서 #6 율곡사
성현의 가르침으로 울려 퍼지는 향약의 메아리

 

율곡사(栗谷祠)는 남면 당항리 1473-4번지(남서대로 770-16) 면사무소가 있는 오른쪽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면 나온다. 큰 길에서 가는 길은 비좁고, 뒤편으로 사우까지 가는 도로가 넓혀져 차로도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주차장이 없어 아쉬웠다.
율곡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율곡이 남해를 찾았거나 유배를 왔다는 기록이 없는데, 어쩐 일로 이곳에 선생을 모시게 되었을까?
율곡은 조심스럽게 지금으로 말하면 지방자치를 제안했다. 관청과 관리가 지역을 관할해 운영하는 것도 좋지만, 지역의 백성들과 유지들이 자발적으로 선행을 권면하고 악행을 교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다만 시기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보았다. 꼭 율곡의 견해 때문은 아니겠지만, 조선시대에는 유향소(留鄕所)나 향교(鄕校) 같은 지방 자치기관이 있어 풍기(風紀)를 바로잡기도 했다.
율곡사는 1968년 3월 15일에 정식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훨씬 오래되었다. 중국의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鄕約)을 기초로 한 향약계(鄕約契)가 율곡이 청주목사로 있으면서 운영했는데, 이후 남해에도 각 면마다 결성되어 정착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변질되고, 해방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남해에서는 유일하게 남면의 향약계가 명맥을 유지해 관련 문헌들이 남아 있게 되었다.
이 문헌들은 소강(素江) 박진용(朴珍鎔) 선생의 노력으로 1983년에 지방문화재자료 제44호로 등록되어 선인의 지혜와 협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남면향약계는 1784년 창립되었고, 1952년 사우건립이 발의되어 1966년 율곡사가 준공되었다. 율곡사에는 해마다 양력 4월 15일에 향채례를 거행하고 있다.

 

누구나 찾아와 기리는 성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날이 화창한 오전 율곡사에서 율곡사보존회 최종현 회장과 강해도 총무를 만났다. 외삼문과 사당 본채, 왼쪽에 석담재(石潭齋)와 오른쪽에 숙헌재(叔獻齋)를 갖춘 단출한 규모였지만, 마당에 풀 하나 없이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보존회 회원은 현재 33분인데, 행사 때면 40여 명이 넘게 참석한단다. 평소라면 100여 분이 넘게 와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규모가 줄었다고 전했다.
최종현 회장은 율곡사는 면민 모두의 재산이자 보물이어서 면사무소에서도 관심이 많고 면민들도 너나없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다소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사우 옆에 테니스장이 있었어요. 지금은 옮겨 가 공터입니다. 전부터 이곳에 공원을 조성해 누구나 와 피로도 씻고 율곡 선생의 정신과 향약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려 했지요. 군청에도 말하고 도의원이나 군의원에게도 시간이 날 때마다 당부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말대로 사우 옆에는 꽤 넓은 공지가 비워져 있었다. 그 터와 주변의 녹지를 활용해 공원을 만든다면, 훌륭한 쉼터와 교육장이 될 듯했다.
강해도 총무도 고충을 토로했다.
“군청에 필요한 사업비 등을 신청하려면 공문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컴퓨터 사용이 서툴러 진땀을 흘립니다. 날마다 사우를 정리하고 청소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꽤나 들여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군청의 배려가 있었으면 그 아니 좋겠습니까.”
군청에서 제례 때 200만 원 정도 제수 비용을 지원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단다. 사실 이런 애로는 율곡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우마다 비슷했다.
“군청살림도 빠듯하니 일일이 챙기기도 어렵겠지만, 소중한 문화유산이 소멸된다면 이보다 큰 손실이 있겠습니까?”
내년이 남해군 방문의 해다.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지키는 일이야말로 남해만의 관광자원 개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면민이 한 마음이 되어 일궈낸 율곡사


율곡사 뒤편에는 퇴락해 보이는 탑이 하나 서 있다. 물어보니 ‘남면참전유공자탑’이라고 했다.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모셨는데, 지금은 관련 자료들이 읍으로 옮겨져 의미가 퇴색했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 눈에는 잘만 복원한다면 호국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되새기는 데 좋은 교육 장소로 쓰일 수 있어 보였다. 향약에도 환난상휼(患難相恤)이라는 강령이 있듯이 말이다.
율곡사보존회는 다른 사우와는 달리 남면장이 명예회장으로 겸직한단다. 면민들도 사우 일이라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문의가 잦단다. 이런 마음과 정성들이 모였기에 율곡사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고 두 분 임원은 말에 힘을 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율곡사를 나오면서 보존회의 소망대로 공원 조성과 향약 정신 선양이라는 숙원이 이뤄진다면 남면에 또 하나의 값진 문화 현장이 마련될 것이라는 희망이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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